디지털 장의사

게임 속 죽음, 디지털 장의사가 마주한 또 다른 이별의 공간

wellnews 2025. 7. 6. 20:11

인터넷이 하나의 사회가 되어가는 오늘날, 게임이라는 공간도 누군가의 삶을 담는 중요한 플랫폼이 되었다.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많은 이들이 수년간의 시간과 정성을 들여 캐릭터를 키우고, 아이템을 수집하고, 친구들과 소통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게임 속 계정은 단순한 ID를 넘어 고인의 분신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하지만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그가 남긴 온라인 게임 속 기록은 어떻게 처리되어야 할까. 디지털 장의사의 역할은 단지 이메일이나 SNS 계정 정리를 넘어서, 점차 이런 가상공간의 흔적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장의사가 온라인 게임 내 계정과 자산,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고인의 흔적을 어떻게 정리하고 기리는지를 살펴본다.

 

게임속 죽음과 디지털 장의사

 

 

게임 계정은 누구의 것인가, 소유권의 경계에서 디지털 장의사가 고민하는 문제

온라인 게임 속 계정은 법적으로 사용자에게 귀속된 재산일까, 아니면 서비스 회사의 관리하에 있는 일시적 접근 권한일까. 대부분의 게임 이용약관은 계정과 콘텐츠의 소유권을 회사가 보유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사용자가 게임 내에 투자한 시간과 금전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유족 입장에서는 '디지털 유산'으로 간주하고 싶어 한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러한 법적 공백 속에서 유족과 플랫폼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 일부 게임 회사는 사망자의 계정 정보를 확인하고, 일정 절차를 거쳐 계정 폐쇄 또는 메모리얼 계정으로 전환해 주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게임에서는 이러한 프로세스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 장의사는 고인의 생전 게임 이용 내역을 바탕으로, 가능한 조치와 한계를 유족에게 설명해야 한다.
온라인 게임은 그 자체로도 고인의 활동 기록이 될 수 있다. 캐릭터가 속한 길드, 친구 목록, 게임 내 메시지, 커뮤니티 게시판 글 등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고인의 사회적 흔적이다. 특히 게임 내에서 고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커뮤니티 내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경우, 그 빈자리를 느끼는 동료 플레이어들의 반응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러한 게임 세계 속의 인간관계와 정서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며, 삭제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때로는 추모의 공간으로 변환하는 방법을 함께 고려한다.


디지털 장의사가 정리하는 게임 속 자산, 정서와 경제의 경계에 서다

게임 계정에는 단순히 레벨이나 캐릭터뿐 아니라 실제 돈을 들여 구매한 아이템, 유료 재화, 희귀 장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일종의 '디지털 자산'으로 간주할 수 있으나, 법적으로는 서비스 이용권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유족이 고인의 계정에 접근하고, 그 안의 자산을 회수하거나 계정을 정리하고자 할 때 디지털 장의사는 현실적 제약을 안내해야 한다. 일부 게임은 계정 양도 자체를 금지하고 있어, 유족이 원하는 대로 계정을 이전하거나 보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고인이 해당 게임에 남긴 발자취가 유족에게 정서적인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 디지털 장의사는 그 잔존 가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최근에는 메타버스와 연결된 게임 플랫폼이 확산되며, 단순한 게임 계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고인이 생전에 남긴 아바타나 가상공간의 구조물, 콘텐츠 등은 일종의 창작물로서 디지털 장의사의 판단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이럴 경우 디지털 장의사는 콘텐츠의 창작 여부, 고인의 표현 의도, 그리고 유족의 정서적 수용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 접근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법률 전문가나 플랫폼 담당자와 협력해 대응 방식을 논의하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적인 삭제보다는, 고인이 남긴 게임 속 자취를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고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관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디지털 장의사의 협업, 게임 안의 추모가 이루어지는 방식

일부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는 사망한 이용자를 위한 자발적인 추모 문화를 갖고 있다. 플레이어들은 고인의 캐릭터와 함께 찍은 스크린샷을 공유하거나, 고인을 기억하는 추모 글을 올리고, 게임 내 공간에서 추모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는 단지 감정적 대응을 넘어서, 온라인 사회에서도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방식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러한 자발적 커뮤니티 추모가 보다 의미 있게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유족에게 이러한 움직임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커뮤니티의 자율성과 유족의 감정을 동시에 존중하면서, 디지털 장의사는 추모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특히 글로벌 게임 커뮤니티의 경우,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혼합되어 있어 추모 방식 또한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다. 한국에서라면 정제된 추모 문구와 일정 기간의 애도 기간이 일반적이라면, 북미나 유럽의 커뮤니티는 보다 자유롭고 개인적인 표현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고 유족에게 설명해 주는 일도 디지털 장의사의 섬세한 소통 역량이 필요하다. 게임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하나의 '공간'이 된 시대에, 그 공간을 어떻게 정리하고 기억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디지털 장의사의 역할이다.


가상 세계에 남은 고인의 흔적, 게임 계정의 정리는 새로운 추모 문화의 시작점

디지털 장의사의 업무는 이제 현실을 넘어 가상의 세계로도 확장되고 있다. 게임이라는 플랫폼은 단순한 놀이 공간이 아닌, 개인의 정체성과 시간이 쌓인 디지털 자산의 또 다른 얼굴이 되었다. 고인이 생전에 남긴 게임 계정을 단순히 폐쇄하거나 삭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유산은 삭제가 아니라 보존과 기억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디지털 장의사는 그 경계를 판단하고, 고인의 삶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조율해야 한다.
게임 속 고인의 흔적을 지우는 일은 결국, 그 사람의 삶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질문이기도 하다. 디지털 장의사가 수행하는 일은 단순한 기술적 조치가 아니라, 사라지는 것과 남겨지는 것 사이의 균형을 세우는 일이 된다. 온라인 게임은 이제 고인의 삶이 머물렀던 또 하나의 공간이다. 그 공간을 정리하는 일은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이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