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장의사가 다루는 기록 중, 이제는 사람이 쓴 것만 정리하는 시대가 아니다. 고인의 스마트폰이나 클라우드, 또는 SNS와 연결된 여러 플랫폼에는 AI가 생성한 콘텐츠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미지 생성 앱으로 만들어진 고인의 디지털 아트, AI 에세이 플랫폼에 남겨진 수십 개의 글, 챗GPT 같은 AI와의 대화 기록까지. 이 콘텐츠들은 고인이 직접 작성하지는 않았지만, 고인의 질문과 취향, 선택이 반영된 기록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디지털 흔적이 된다.
문제는 이런 콘텐츠가 개인 창작물로 간주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AI가 만든 임시 데이터로 처리되어야 하는가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 애매한 영역을 넘나들며 콘텐츠 하나하나에 대해 정리 기준을 설정하고, 유족과 협의하며, 때로는 폐기 또는 백업의 판단을 직접 내리게 된다. 본 글에서는 디지털 장의사의 관점에서 고인의 AI 생성 콘텐츠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며 이를 정리함에 있어 무엇을 기준 삼는지가 중심 주제가 된다.
디지털 장의사가 처음 마주하는 AI 콘텐츠의 모호한 정체성
AI 생성 콘텐츠는 언뜻 보면 그저 앱으로 만든 이미지거나 자동 생성된 글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고인의 취향, 감정, 창작 의도가 분명히 스며 있다. 예컨대 미드저니(Midjourney)나 렌사(Lensa) 같은 이미지 생성 앱을 통해 만든 디지털 아트는 고인의 지시어(prompt)를 통해 탄생했다. 이 지시어는 단순히 단어의 조합이 아니라, 고인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장면,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고자 했던 감정의 결과다.
이와 유사하게 고인이 챗GPT, Bing AI, Bard 등 생성형 AI와 나눈 대화 내용도 마찬가지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입력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AI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은, 질문을 던진 사람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AI가 생성한 문장은 기술이 썼지만, 질문은 고인의 삶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디지털 장의사가 이런 콘텐츠를 마주했을 때, 단순히 파일 여부만으로 정리 기준을 삼을 수 없다. 해당 콘텐츠가 얼마나 고인의 개입과 의도를 담고 있는지, 그 기록이 유족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될 수 있는지, 그리고 사적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니면 공적인 아카이브의 일부로 남겨야 하는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 판단 과정은 기술보다 윤리에 가깝고, 단순 백업보다 훨씬 복잡한 정서적 정리 과정이 필요하다.
디지털 장의사가 유족과 협의해야 하는 AI 기록의 처리 방향
AI 콘텐츠의 정리는 무엇보다 유족이 콘텐츠의 정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일부 유족은 고인이 AI를 활용해 쓴 글이나 만든 이미지를 ‘그저 앱으로 만든 자료’ 정도로 인식하고, 깊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유족은 고인이 챗GPT를 이용해 매일 일기를 쓰고, AI 시인과 주고받은 문장들에서 삶의 단서를 찾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그 기록을 ‘고인의 마지막 표현’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처럼 가족의 감정 온도와 기록의 정서적 농도를 모두 고려해 협의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우선 기록의 종류를 분류하고(예: 이미지, 글, 대화), 각 콘텐츠가 남긴 의도나 흐름을 설명한 뒤 정리 방식에 따른 장단점을 안내한다. 예컨대, AI로 만든 이미지는 파일로 백업해 전달하거나, 일부는 인쇄해 유품에 포함할 수 있고, AI 대화 기록은 정리본을 만들어 문서 형태로 제공하는 방식이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콘텐츠를 기술적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그 기록이 가족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를 먼저 설명하는 것이다. 장의사는 단순히 전달자가 아니라 유족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를 먼저 묻고, 그에 따라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어떤 경우에는 고인이 챗GPT에 남긴 시적 문장을 가족이 보고 눈물을 흘리며, “이건 아버지가 쓰신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AI 콘텐츠는 그 생성 방식과 무관하게 사람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산이며, 그 감정이 곧 정리 기준이 된다.
디지털 장의사 시선에서 본 AI 창작물의 보존 가치와 윤리적 한계
디지털 장의사가 AI 콘텐츠를 정리하면서 가장 많이 마주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 콘텐츠는 고인의 자산인가, 아니면 플랫폼의 결과물인가?
기술적으로만 보면 AI가 만든 이미지나 문장은 저작권이 명확하지 않다. 특히 챗GPT나 이미지 생성 플랫폼의 경우, 이용자에게 콘텐츠의 소유권이 완전하게 귀속되지 않거나, 일부는 상업적 이용만 제한된 상태로 남는다. 그러나 디지털 장의사는 그 콘텐츠를 기술 기준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의 기준으로 바라본다.
AI가 만든 콘텐츠라도, 그것이 고인의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고, 고인의 맥락 안에서 생성되었다면, 그것은 고인의 자산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콘텐츠를 정리할 때, 기술적 소유권 여부보다는 ‘의미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윤리적 한계도 분명하다. 예컨대, 고인이 AI와 나눈 대화 내용 중에는 우울하거나 불안한 정서가 담긴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고인이 AI에게 사적인 고민을 털어놓으며 가족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진심을 드러낸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때 장의사는 그 내용을 유족에게 그대로 전달해야 할지 아니면 감정적 파장을 고려해 선택적으로 공유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AI 콘텐츠는 기술적으로는 한계가 없지만, 윤리적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디지털 장의사는 바로 그 윤리의 경계 안에서 감정과 정보의 균형을 맞추는 조율자가 된다. 생성형 AI가 만든 콘텐츠도 결국 고인의 자아를 투영한 결과물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기억의 한 형태로 인정되어야 한다.
디지털 장의사가 AI 기록을 정리하며 남기는 마지막 선택
모든 콘텐츠가 그렇듯, AI 생성물도 마지막에는 ‘남길 것인가, 지울 것인가’라는 선택 앞에 놓이게 된다. 디지털 장의사는 AI 콘텐츠의 정리를 단지 기술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는다. 장의사는 고인의 감정과 선택, 질문과 응답, 그리고 유족의 감정적 수용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 정리 계획의 형태를 완성한다.
실제로 어떤 고인은 AI를 활용해 매일 새벽 일기처럼 글을 썼다. 장의사는 고인의 대화 기록 전체를 유족에게 바로 전달하지 않고, 시간순으로 정리해 PDF로 구성한 뒤, ‘고인이 매일 새벽 어떤 감정으로 질문을 했는지’ 중심으로 요약 보고서를 만들어 함께 제공했다. 이때 유족은 단지 기록을 넘겨받은 것이 아니라, 고인의 ‘마음의 흐름’을 전해 받았다고 느꼈다.
AI가 만든 콘텐츠라고 해서, 그것이 인간이 만든 감정의 기록보다 덜 소중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의 마지막 질문을 기억하고, 그 질문에 따라 생성된 문장들을 통해 고인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정리 행위일 수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 콘텐츠들을 마주하면서 기술이 아닌 마음을 기준으로 판단하며, 삭제보다는 해석, 전달보다는 배려, 정리보다는 기념의 관점으로 그 흔적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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