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장의사가 정리하게 되는 계정 중에는 당연히 접근 가능한 계정도 있지만, 때때로 그 어떤 로그인 정보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의 계정을 마주할 때가 있다. 사망자가 생전 사용하던 이메일 주소나 SNS, 클라우드, 메신저 계정에 대해 유족이 존재 자체는 알고 있지만, 비밀번호도, 2단계 인증 수단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심지어 일부 계정은 타인의 이름으로 개설되어 있거나, 휴대폰 번호가 해지되어 본인 인증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디지털 장의사는 단순한 기술 전문가가 아니라, 정리의 경계를 결정짓는 윤리적 판단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로그인 불가 상태라는 기술적 한계는 곧 정보 접근의 제한이자 고인의 사적 영역을 존중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기로가 되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디지털 장의사가 로그인할 수 없는 계정을 마주했을 때 실제로 어떤 절차와 고민을 거치게 되는지를 중심으로 그 실무적 딜레마와 윤리적 기준을 함께 살펴본다.
로그인 불가 계정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정리의 첫 장벽이다
디지털 장의사에게 있어 계정 정리의 시작은 접근 권한의 유무다. 대부분의 유족은 사망자의 주요 계정에 대해 '이메일 주소는 알지만 비밀번호는 모른다', '로그인 기기가 없어 접근이 안 된다', '핸드폰 번호가 해지돼 인증이 되지 않는다'와 같은 형태의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2단계 인증이 활성화된 구글, 애플, 네이버 같은 플랫폼은 인증 번호 수신이 불가능한 상태에선 복구 자체가 막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정 정리는 기술적으로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장의사는 보통 본인 인증을 위한 증빙서류를 준비해 플랫폼 측에 유족 권한을 요청하지만, 실질적인 승인율은 매우 낮다. 이는 고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정책이자, 부정 접근을 방지하기 위한 글로벌 기준 때문이다. 따라서 장의사가 계정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정리 방향은 완전히 달라진다. 계정 안의 정보를 백업하거나 복사하는 방식이 아닌, 접근 불가 상태에서 유족과 함께 정리 계획을 다시 설계하는 절차로 전환되는 것이다.
유족은 알고 싶어 하고, 장의사는 조심해야 한다는 모순된 요구
로그인이 되지 않는 계정은 유족에게 더욱 강한 궁금증과 집착을 유발한다. “혹시 저 계정 안에 중요한 사진이 있을까요?”, “가족에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요?”, “숨겨둔 파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요?” 같은 요청은 계정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는 감정적 반응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때 매우 민감한 조율자로 역할이 전환된다. 기술적으로도 접근할 수 없고 윤리적으로도 섣불리 복구 시도를 해선 안 되지만 유족은 여전히 가능성을 기대한다. 더 나아가 해킹을 시도하거나 비공식적인 수단을 통해 접근할 방법은 없는지 물어오는 경우도 존재한다. 장의사는 이때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응대해야 한다.
고인이 명확하게 계정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은 곧 해당 정보에 대한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유족의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장의사는 고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윤리적 기준을 기반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어떤 유족은 장의사의 이 같은 원칙적 태도에 실망감을 표하기도 하지만 이후 시간이 흐른 뒤 “그때 조심해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정보란 언제나 기술보다 감정이 앞서 있는 대상이며 그 감정의 온도를 정확히 읽고 판단하는 것이 장의사의 직무다.
디지털 장의사의 실무 판단은 ‘복구’가 아닌 ‘기록의 종결’에 있다
접근이 불가능한 계정을 복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정되면, 디지털 장의사는 해당 계정을 기록의 종결 지점으로 간주한다. 더 이상 데이터를 건드릴 수 없는 상태에서는 유족이 그 계정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과 해석만이 남는다. 이때 장의사는 실무적으로는 ‘복구 불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유족에게 계정이 남긴 의미를 감정적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고인의 오래된 네이버 계정에 접근할 수 없게 되자, 자녀는 “그 계정은 어머니가 매일 시를 써서 올리던 블로그가 연결된 곳이라 어떻게든 보고 싶다”고 요청한 적이 있다. 장의사는 플랫폼에 공식 요청을 넣고, 복구 가능성을 확인한 뒤 복구가 되지 않는다는 최종 통보를 받은 후, 유족에게 그 사실을 전달하며 “해당 공간은 이제 고인만의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는 정리의 언어를 전했다. 이후 유족은 계정 접근을 포기하고, 어머니가 생전에 인쇄해뒀던 일부 글들을 스캔해 가족 앨범에 추가했다.
이처럼 로그인 불가 계정은 복구를 목표로 하기보다 정보가 닿지 않는 지점에서 정리의 의미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 감정적 전환 과정을 유족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이며 동시에 남겨진 계정에 대한 기억의 관문을 닫아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디지털 장의사가 계정 접근 불가 상황에서 지켜야 할 마지막 원칙
모든 기술에는 경계가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그 경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며 동시에 그 경계 안에서 감정을 조율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계정 접근 불가 상황은 기술적인 한계와 감정적 갈망이 가장 강하게 충돌하는 지점이다. 고인은 계정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떠났고, 유족은 남겨진 것을 보고 싶어 한다. 그 사이에서 장의사는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야 하는 사람이 된다.
실제로 장의사는 유족에게 “더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그러나 바로 그 한계 인식이 장의사의 윤리를 증명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고인의 사생활은 사후에도 존중받아야 하며,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 해도 본인의 동의 없이 열어볼 수 없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디지털 장의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장의사는 로그인 불가 계정을 정리할 때, “이 계정은 고인의 삶에서 비워진 공간이 아니라, 고인만이 열 수 있었던 방이었다”는 메시지를 유족에게 전하며 기술적 정리 이상으로 감정의 정리를 안내하는 역할을 완수해야 한다. 디지털 장의사에게 계정 정리는 단순한 업무가 아니다. 그것은 고인의 권리와 유족의 기억, 기술과 감정의 경계선 위에서 일어나는 작고 조용한 윤리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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