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장의사

디지털 장의사와 생전 계약: 살아있을 때 준비하는 디지털 유언의 의미

wellnews 2025. 7. 1. 16:18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그 이후에 남겨질 디지털 자산을 스스로 정리해 두는 일은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현실에서도 유언장과 같은 사전 준비가 법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듯, 디지털 세계에서도 '생전 계약' 또는 '디지털 유언'이라는 개념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더 이상 사망 이후에만 등장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제는 살아있는 동안 본인이 미리 계정 정리 방식, 파일 보존 여부, 공개 범위 등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장의사와 협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처럼 생전에 자신의 온라인 흔적을 스스로 정리하거나 그 방법을 지정해 두는 것은 유족에게 감정적 부담을 덜어줄 뿐 아니라, 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를 예방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디지털 장의사와 디지털 유언


생전 계약이 필요한 이유와 사회적 변화

디지털 자산이 생활 깊숙이 스며든 오늘날, 개인의 SNS 계정 하나만 해도 수천 개의 게시물, 수많은 사진, 대화 기록, 영상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를 사망 이후에 유족이 정리하려고 하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생전에 고인의 의사나 계정 목록, 정리 기준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면, 유족은 데이터 삭제와 보존을 두고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된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생전 계약'이며, 디지털 장의사는 이 과정에서 정보 정리 컨설턴트의 역할을 맡는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사전 정리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되었지만, 이제는 '웰다잉(well-dying)'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디지털에서도 '존엄한 퇴장'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 장의사와 계약을 체결하거나, 온라인 상속 플랫폼을 활용해 계정 정리 방식, 유산 공유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정해두는 것이 새로운 디지털 문화로 자리 잡는 중이다. 최근에는 20~30대 청년층도 이러한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며, 자신이 떠난 이후에도 자신답게 기억되길 바라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공간 속 흔적도 자아의 일부로 인식되면서, 생전 정리는 단순한 정리를 넘어 자기표현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디지털 유언에 포함되는 주요 항목들

생전에 디지털 자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결정하려면 몇 가지 구체적인 항목을 미리 정해둘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사용하는 주요 플랫폼의 목록을 작성하고, 각 계정의 접근 방식과 로그인 정보를 안전하게 기록해 두는 것이다. 이 정보는 단순히 아이디와 비밀번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2단계 인증, 보안 앱, 복구 이메일 등까지 포함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각각의 계정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할 것인지 기준을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추모 계정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구글은 '계정 비활성화 관리자'를 통해 사후 처리 방식을 미리 지정할 수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러한 기능들을 설명하고, 사용자가 생전에 적절한 옵션을 선택하도록 돕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추가로 남기고 싶은 메시지, 공유하고 싶은 콘텐츠, 삭제를 원하는 민감 정보 등을 분류해 두는 작업도 중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사망 이후에도 본인의 의지가 최대한 존중될 수 있다.
더불어, 이미지와 영상, 블로그 게시물, 유튜브 콘텐츠처럼 창작물이 포함된 디지털 자산은 단순한 계정 정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산은 상속 대상이 될 수 있고, 수익과 연결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에 사전에 정리 기준을 명확히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콘텐츠가 타인과 협업한 결과물일 경우, 저작권이나 공유권에 대한 의사도 문서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처럼 콘텐츠의 법적 성격까지 고려해 유언 항목 설계를 돕는다.


디지털 장의사와의 생전 계약 절차

디지털 장의사와의 생전 계약은 일반적으로 1:1 상담을 통해 시작된다. 상담을 통해 사용자가 어떤 플랫폼을 사용 중이며, 어떤 계정이나 파일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이후 각 계정에 대해 삭제, 보존, 이관, 비공개 등의 조치를 지정하는 문서가 작성된다. 이 문서는 일종의 디지털 유언장 역할을 하며, 사용자의 서명 또는 공증을 통해 법적 효력을 갖도록 보완되기도 한다.
계약서에는 계정 목록만 아니라, 정리 시점과 책임자 지정까지 포함된다. 예를 들어 사망 직후 정리를 원하는지, 특정 기일이 지난 후에 처리할지를 미리 정할 수 있고, 특정 유족 또는 디지털 장의사에게 정리 권한을 위임하는 구조로 설정할 수도 있다. 일부 전문 업체는 이를 ‘디지털 사후 플랜 서비스’로 정식 상품화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계정 상태 점검과 주기적 갱신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디지털 자산의 보관과 전달을 암호화 기술로 처리하는 방식도 도입되고 있다. 예를 들어 생전 계약을 맺은 사용자의 클라우드 저장소에 특정 문서나 파일을 암호화해 보관하고, 사후 지정된 수신자에게만 열람 권한을 부여하는 형태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생전 정리 계획을 보다 안전하게 실행할 수 있으며, 디지털 장의사는 이러한 기술적 보안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전문가로 기능한다.

 

앞으로 디지털 유언 문화의 확산과 장의사의 역할 변화

디지털 장의사의 역할은 앞으로 단순한 삭제 대행을 넘어, 살아있는 사람의 데이터를 함께 설계하는 디지털 생애 관리 전문가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MZ세대처럼 온라인 정체성과 자아 표현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일수록, 생전부터 자신의 디지털 흔적에 대해 세밀하게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디지털 유언장은 자신만의 온라인 삶을 설계하고, 마지막까지 의지를 반영할 수 있는 도구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 플랫폼 차원에서도 생전 설정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애플의 유산 연락처 지정 기능, 구글의 사후 계정 관리 기능, 페이스북의 추모 계정 전환 등은 모두 사용자가 스스로 설정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러한 기능을 활용해 고객이 플랫폼별로 자신만의 사후 정리 계획을 설정할 수 있도록 도우며, 필요시 법률 전문가와 협력해 유언장과 연결된 디지털 처리 구조를 설계한다.
궁극적으로는 디지털 장의사가 개인의 삶을 함께 설계하고, 퇴장까지도 책임지는 ‘디지털 생애 파트너’로 진화할 것이다. 온라인상에 남겨진 데이터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그 사람의 철학과 가치관이 반영된 삶의 흔적이다. 생전부터 이를 정리하고, 정리 방식에 자신의 의지를 담아두는 일은 단지 기술적인 정리가 아니라, 삶의 한 단락을 정성껏 마무리하는 문화적 행위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