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장의사는 해킹된 고인의 계정을 어떻게 지켜낼까?
인터넷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은 기록된다. 그 기록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그가 남긴 데이터는 여전히 웹 어딘가에 남아 있다. 디지털 장의사가 맡는 가장 민감한 상황 중 하나는, 고인의 정보가 악의적인 목적으로 유출되거나 도용되는 경우다. 단순한 데이터 정리를 넘어, 사이버 범죄로부터 고인의 명예와 개인정보를 지켜야 하는 책임이 디지털 장의사에게 주어진다. 이 글에서는 사망자 데이터 유출이라는 극단적이고 위협적인 상황에서 디지털 장의사가 수행하는 역할과 윤리적, 기술적 대응에 대해 살펴본다.
정보 유출이 발생한 뒤, 디지털 장의사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디지털 장의사가 우선하여 파악하는 것은 유출 범위와 유출된 정보의 종류다. 이메일, 신분증 사본, 금융 정보, 사진 등의 민감한 정보가 포함돼 있다면, 그에 따라 조치 방법은 달라진다. 사망자의 정보는 현행법상 유족에게 관리 권한이 위임되는 경우가 많지만, 해당 데이터가 어디에서 유출되었는지, 원인이 고인의 계정 해킹인지 혹은 제3자의 접근인지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플랫폼별로 고객센터와 접촉하거나, 사이버 범죄 수사 기관에 협조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수습에 나선다.
실제로 디지털 장의사는 유출된 정보가 외부 커뮤니티나 다크웹에 게시되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그 흔적이 남지 않도록 빠르게 대응한다. 그 과정에는 플랫폼의 삭제 요청뿐 아니라, 검색엔진의 색인 제거, 유해 게시물 필터링 요청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또한 일부 경우에는 사망자의 과거 정보가 재가공되어 제3의 범죄에 악용되는 일도 있기 때문에, 디지털 장의사는 고인의 디지털 자산 전체를 조망하면서 위험 요인을 식별해야 한다. 단순히 파일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유포될 경로를 추적하고 차단하는 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사망자의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윤리와 법의 경계에서 서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 과정에서 민감한 윤리적 딜레마와 마주하게 된다. 사망자의 정보가 유출되었다 하더라도, 유족이 이를 대리해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이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부 국가는 사망자의 개인정보를 유족이 요구하면 제한적으로 공개하거나 삭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나, 여전히 플랫폼마다 정책이 달라 법률 공백이 발생하기 쉽다. 디지털 장의사는 유족이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부분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조언해야 한다. 고인의 의사와 유족의 요청, 그리고 플랫폼의 규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단순한 기술 지원 그 이상이다.
사망자의 계정이 여러 개 존재하는 경우, 어떤 계정에 먼저 접근해야 할지도 판단의 대상이 된다. 특히 유료 결제 이력이 남아 있는 계정이나, 본인 인증이 완료되지 않은 서비스는 권한 이전이 어렵고, 경우에 따라선 계정 복구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고인의 생전 활동 이력을 가능한 한 정리하여 유족에게 계정별 특성과 대응 우선순위를 안내한다. 동시에 감정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정보를 수집해야 하므로, 사려 깊은 접근 방식이 필수적이다. 법률적 자문이 필요한 경우 전문가와의 연계를 통해 대응하는 것도 디지털 장의사의 역할 중 하나다.
정보 유출 방지를 위한 기술적 사전 대응도 디지털 장의사의 몫
디지털 장의사의 역할은 사고 이후의 수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전에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 역시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고인이 남긴 모바일 기기의 잠금 해제 여부, 2단계 인증 설정, 클라우드 자동 백업 해지 여부 등은 유출을 방지하는 기본적인 조치다. 디지털 장의사는 유족이 고인의 기기를 다룰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공하고, 주요 계정이 정지 혹은 삭제 처리되도록 절차를 진행한다. 이러한 과정은 실질적인 유출 사고를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디지털 유언장처럼 사전 계획 문서가 있는 경우에는 더 빠르고 정확한 대응이 가능해진다. 기술적 이해와 감정적 공감이 동시에 요구되는 상황에서, 디지털 장의사는 두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조력자가 된다.
또한 최근에는 암호화폐, 블록체인 기반 자산, NFT 등 기존보다 훨씬 복잡한 디지털 자산이 사망자 데이터 안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 경우 사망자의 인증 없이 접근할 수 없는 특성 때문에, 유출이 발생할 경우 복구 자체가 어려운 상황도 생긴다. 따라서 디지털 장의사는 생전 사전 등록된 계정 목록이나 복구 코드 등을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복수 인증 절차가 필요한 항목은 사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유족에게 컨설팅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이러한 사전 조치는 사망 이후 기술적 장벽으로 인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줄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사후 정보보안은 살아 있는 사람의 책임인가,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
디지털 장의사를 둘러싼 논의는 점점 기술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철학의 주제로 확대되고 있다. 한 사람이 생전에 남긴 수많은 기록은 그 사람 삶의 일부이며, 때로는 고인의 명예와 직결되는 중요한 자산이다. 정보 유출 사고는 단순한 해킹 피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존재가 침해당하는 문제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장의사의 역할은 단순한 삭제나 계정 정리를 넘어서, 고인의 존엄을 보호하는 사회적 기제로 자리 잡아야 한다. 기술이 고인을 대하는 태도가 곧,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장의사가 수행하는 작업은 더 이상 단순한 ‘계정 종료’에 머물지 않는다. 온라인의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는 의도치 않게 타인의 손에 의해 왜곡되어 퍼질 수 있다. 특히 유족의 허락 없이 SNS 계정을 복제하거나, 고인의 신분으로 위조 계정을 만드는 사례는 실제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장의사가 가장 빠르게 대응해야 할 사안 중 하나로 꼽힌다. 고인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존재를 왜곡 없이 지키는 것이 디지털 장의사의 핵심 역할이다.
사망자의 디지털 정보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기억을 구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정보 유출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 앞에서, 디지털 장의사는 기술과 정서를 동시에 다루며, 고인의 삶을 지키는 마지막 수호자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존재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